나는 정년 5년을 앞두고 전자공고에서 해운대공고로 부임하였습니다.
이 학교는 사립학교였는데 국가에 헌납을 하여 공립학교가 되어 나도 자연스럽게 옮길 수가 있었습니다. 그리고 내가 부임할 때는 아직도 사립학교 시절에 계셨든 선생님들이 제법 많이 남아 계셨으며, 공립고에서 온 교사로는 어느정도 선발대에 가까운 입장이였습니다.
그래서 그런지 기존에 계셨든 선생님과 쉽게 어울리기도 힘들거니와 술자리를 함께 한다는 건 더욱 힘들었습니다. 아침에 출근하여 교실 수업을 하고 나면 종일 혼자 내 자리에 앉아서 일을 봐야 할 형편이였습니다.
부근 자리에도 종일 비어 있었습니다. 처음에는 술자리가 없이 일찍 퇴근하는 나를 반기며 좋아하든 집사람도 나중에는 근심스러운 눈길로 볼 정도였습니다.
1년 쯤 지나면서 이 학교는 6.25동란 이후 피난민들이 들끓은 어려운 시절, 부모 없는 고아들이나 가족이 없는 어려운 사람들을 돌보는 시설을 운영하든 노부부에 의해 그 옆 빈 땅에 만들어진 걸로 전해 들었습니다. 시설에서 성장해 가는 그 들이 이 사회에서 제값을 하며 뿌리 내릴 수 있는 방법은 기술 뿐이라는 생각에서 기술고등학교로 출발하였습니다.
교훈 '일인 일기'에서 그 노부부의 가슴에 담겼던 신념을 읽을 수 있었고 이를 뒷받침이나 하듯 그때 졸업하여 사회 요소요소의 중요한 위치에서 일을 하고있는 동창들을 뒷날 많이 볼 수 있었습니다.
후일, 돌아가시기 전에 우리 사회에서 하기 힘던 기술교육 등을 고려하여서인지, 나라에다 맏기고 돌아가셨습니다.
그 노부부의 기일이 되면 사립 때 근무하셨든 선생님들이 집으로, 절로 다녀 온 후담들을 나누는 걸 보면서, 살아 계실 때 선생님들을 얼마나 자상하게 대하였는지를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.
또 그들로 부터 배운 제자들은 사랑이 무엇인지 알 것이라 짐작하기도 하였습니다.
월드컵 때도 시내 각 학교로 떠나 계시던 그들이 친정나들이 하는 딸처럼 부모님학교에 모여 밥늦게까지 정담을 나누는 걸 보았습니다. 자녀 사랑이 지극한 부부 품에 자란 자녀들 그 모습 그 대로였습니다.
그 들은 어느 누구의 대소사도 소흘히 넘기질 않았습니다. 집념처럼 찾아다니는 듯 보였습니다.
과정을 알며 스며든 정서는 세월이 흐르는 동안 우리도 변하고 있었습니다. 지금은 사립때 계셨든 그 분들은 모두 떠났지만 공립에서 오신 선생님들이 그 모습이되어 지내고 있습니다.
그 들의 뜨거운 배웅을 받으며 떠날 수 있어 나는 행복하였습니다.
해운대공업고등학교에서 2010년 2월 10일 퇴임하였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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